훌루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된 TV시리즈 ‘쇼군’이 프리미어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제임스 클라벨(James Clavell)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창작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인물들의 행적이나 이름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코스모 자비스(Cosmo Jarvis)가 연기하는 존 블랙손(John Blackthorne)은 영국인 항해사입니다. 그는 1600년 일본 해안에 난파되고, 히로유키 사나다가 연기하는 일본의 다이묘 ‘요시이 토라나가’ 휘하 사무라이가 됩니다. 존은 일본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토리나가가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만약 동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과 TV시리즈가 실제 역사 속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윌리엄 애덤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이후,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은 내전 상태에 있었습니다. 윌리엄 애덤스가 일본에 도착한 1600년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 가문의 수장 이에야스가 승리한 해입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에도시대가 시작됩니다.

이 시기 일본에 도착한 윌리엄 애덤스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카톨릭 세력에게 위협을 받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카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이로 인해 훗날 일본이 카톨릭 국가들과 교류를 끊고, 오직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와 교류하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윌리엄 애덤스는 영국인 사무라이라는 점 때문에 현대 서구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는 도쿠가와 가문을 도와 서양식 범선 건조를 도왔습니다. 또한 여러 서양의 학문을 이에야스에게 전했습니다. 이에야스는 애덤스에게 영지와 농노를 주고 그를 사무라이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미우라 안진(三浦按針, Miura Anjin)**이라는 일본식 이름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양인의 시각으로 묘사한 동아시아는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서양 TV시리즈나 영화에서 아시아는 신비로운 모험의 장소입니다. 주인공은 이 곳에서 신비로운 경험을 하거나 이국적인 여성과 사랑을 해야 합니다. 때문에 실제 아시아 문화와 괴리 된 설정이나 장면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2014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동아시아를 판타지 세계로 묘사했습니다. 남송의 재상 자 스다오(Jia Sidao, 賈似道)는 무술의 달인으로 묘사되고, 중국의 황후가 팜므파탈적 인물로 그려집니다. 실제 유교 문화권의 귀족들이 어땠는지 알고 있는 아시아 시청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이었습니다.

2003년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도 아시아 시청자들에게 안 좋은 의미로 충격적인 작품입니다. 쿨 재팬(Cool Japan)이라는 왜곡된 시선으로 묘사된 사무라이들은 낭만적인 전사들로 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사무라이들은 농노들을 착취하고, 다이묘들에게 고용된 용병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무라이의 ‘무사도’는 이미 무사의 시대가 끝나고, 화약무기가 발달한 이후에 등장한 개념입니다. 무사들의 신념보다는 일본을 장악한 도쿠가와 가문의 통치 이데올로기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사무라이에 대한 서양인들의 이미지는 19세기에 서양 기사도와 합쳐져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무사도는 훗날 일본 군국주의로 이어졌고, 일본제국은 중국 난징에서 30만명을 학살하는 등 ‘아시아의 나치’로 불렸습니다. 사무라이와 무사도에 대한 낭만적 묘사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경악할만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톰 크루즈와 제작자가 '일본의 정신'에 집착했다는 것은 아시아인 입장에서 굉장히 우스운 일입니다.

물론 이 시리즈는 아직 첫 에피소드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왕좌의 게임’ 처럼 중세 유럽 기사들의 실제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을 수도 있습니다. (유럽이 아니라 웨스테로스의 기사들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이미 주인공 존과 일본인 여성 토다 마리코의 팜므파탈적 관계가 여러 예고편에서 암시되었습니다.

토다 마리코는 호소카와 다라샤라는 실제 인물을 각색한 캐릭터로, 윌리엄 애덤스와는 딱히 상관이 없는 인물입니다. 이런 식의 각색은 라스트 사무라이(2003) 마르코 폴로(2014) 등 여러 할리우드 영화와 TV시리즈에서 사용된 진부한 클리셰입니다.

문제는 이 TV시리즈가 2024년에 제작된다는 점입니다. 좀 더 신선한 '할리우드 사무라이 쇼'를 원하는 아시아 시청자들은 일단 기대치를 낮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쇼군'은 2024년 2월 27일 훌루와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됩니다.